글 쓰는 법

대화적 읽기

volleyball manager 2023. 11. 23. 00:00


 어제의 포스팅에 이어서, 오늘은 읽는 방법 중 '대화적 읽기'에 대해 알아보겠다.


 글 쓰는 이는 다양한 지식, 정보, 생각, 의견 등을 자신의 의도에 맞게 선택하여 체계적으로 조직하면서 글을 작성한다. 따라서 한 편의 글에는 글쓴이의 견해나 관점과 함께, 글쓴이가 받아들여 가공한 또 다른 텍스트들의 여러 목소리가 겹쳐 있기 마련이다.



 글을 읽는 것은 텍스트에 공존하는 다성적 발화에 귀를 기울이는 행위인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구성하여 새로운 질문과 답을 생성해 내는 행위이다. 이런 점에서 모든 읽기란 대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글쓰기를 준비하면서 관련 텍스트를 읽을 때는 대화적 관계를 더 공고하게 형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마주한 텍스트를 충실하고 풍부하게 이해하는 일을 시작으로, 자신의 생각을 생성하고 구축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대화할 때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지 않으면 전달하는 내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상대방의 말을 흘려듣거나 무시한 채 자기 말만 계속하는 것은 대화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텍스트를 읽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글쓴이의 생각과 의견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읽는 이가 완수해야 하는 책임이다. 이를 위해서는 글쓴이의 의도와 주장, 그리고 발언의 위치와 목적 등을 입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텍스트를 채우고 있는 다채로운 목소리들을 차근차근 이해해 나가다 보면, 글쓴이가 수학의 역사에 관한 책을 소개하면서 이 책이 갖는 의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파악하게 된다. 읽는 이는 정밀하고 성실한 텍스트 독해를 통해 글쓴이가 발견한 새로운 사실, 글쓴이의 생각. 관점, 의도가 다양하게 중첩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생산적인 텍스트 읽기는 궁극적으로 읽는 이의 창의로 이어진다. 읽는 이는 자신이 마주했던 텍스트를 경유하여 자기 고유의 문제, 관점, 견해 등을 주체적으로 구성하게 된다.



 기존의 텍스트에서 출발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의미 생성으로 나아가는 읽기는 원래의 텍스트를 창조적으로 재생산하는 적극적인 실천 행위이다. 글 쓰는 이는 텍스트를 읽으면서 발견한 것을 확장하고 심화시켜, 자신의 생각을 형성하는 재료로 삼아야 한다. 텍스트 읽기를 통한 창의적 발견은 좋은 읽기의 목적인 동시에 좋은 글쓰기를 위한 중요한 방법이자 행위이다.



 다음 예문은 창의적 발견으로서의 읽기가 성공적인 글쓰기로 이어지고 있음을 잘 보여 준다.







 아마 그 사람들은 과다 지출을 감수하며 ‘명품’을 샀을 것이다. 혹은 그 가방과 넥타이가 이른바 ‘짝퉁’이라면 아이러니는 더 쉽게 이해된다. 하지만 그 가방이 진품인지 짝퉁인지는 오히려 사소한 차이이다. 진품과 짝퉁을 휘감는 공통점은 ‘럭셔리 열풍’이다. 진품과 짝퉁은 '럭셔리 열풍'에 휘감겨 있는 사람들의 경제력에 따른 차이에 불과하다. 어느 누군가의 말처럼 “럭셔리라 써 놓고 명품이라 읽는" 우리 시대의 주술에 부자든 중산층이든, 직장인이든 대학생이든 모두 사로잡혀 있다. 이 마법은 우리 시대의 커다란 수수께끼이다. (중략)



 하지만 아무리 따라잡고 흉내 내도 부자가 아닌 사람은 과시적 소비를 위한 럭셔리 상품의 유행이 폭포수처럼 아래로 떨어지는 저 높은 곳에 도달할 수 없다. 피라미드의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이 흉내 내는 속도보다, 저 높은 곳에서 만들어지는 유행의 스피드가 늘 더 빠르기 때문이다. (중략)



 유권자가 소비자가 되는 사회에서, 소비주의는 개인의 무거운 선택을 가벼운 선택으로. 정치 투표장에서의 고민을 백화점에서의 고민으로, 정치적 권리인 자유를 경쟁하는 브랜드 중 무엇을 고를 것인가의 자유로 바꿔 놓는다. 그래서 부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부자들의 불법 상속에 무관심해지고. 쇼핑몰에 습관적으로 북적대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투표율은 낮아지고. 고객 상담실에 전화를 걸어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공적인 일에 분노하는 사람들은 줄어드는 법이다. 이번 주말에도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훈장을 수집하러 차를 몰고 교통마비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웃렛으로 몰려간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웃렛에서 아는 사람을 마주치는 순간 멋쩍은 표정을 짓고, 내 훈장이 짝퉁임을 알아보는 눈썰미 있는 사람의 눈초리를 무서워한다. 짝퉁임이 드러나는 날. 자신의 훈장인 ‘명품'이 자본주의의 승자라는 표시에서 속물이라는 딱지로 전락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럭셔리 열풍'이라는 사회 • 문화적 현상을 “자본주의의 훈장을 얻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한다. 이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과정에서, 베블런의 『유한계급론』과 나카무라 우사기의『나는 명품이 좋다』의 문제의식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럭셔리 열풍'이라는 텍스트 자체를 읽어 내는 데 다른 텍스트가 영감을 주고 이론적 틀과 분석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글쓴이는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론을 통해 현재 우리 사회의 “채워지지 않는 흉내 내기”를 포착하고, “부자라는 골을 향해 달리는 게임”론에 기대어 "개인의 무거운 선택을 가벼운 선택으로 바꿔 놓은 소비주의”를 포착한다.



 이처럼 글은 텍스트를 겹쳐 읽고 겹쳐 쓰면서 사유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따라서 글 쓰는 이는 쓰는 작업에서 읽기 능력의 신장이 가지는 중요성을 충분히 파악하고, 읽기의 목적과 방법에 대한 이해와 실제적인 기술 습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오늘은 대화적 읽기에 대해 알아보았다. 읽기에 대한 이해는 곧 좋은 글쓰기로 이어진다. 어쩌면 평생토록 써야 할 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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