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기원전부터 현재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 동안 글을 써 왔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긴 문장 형태의 글쓰기가 시작되었음이 정설에 가깝다. 인류는 왜, 어째서,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가?
인류가 글을 쓰고 읽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글로써 인류는 정보를 전달하고, 문화를 누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에는 한계가 있다. 구어는 모든 것을 전달할 수 없다. 문자는 그런 이유로 만들어졌다. 말하자면 텍스트는 언어의 보완인 셈이다.
인류는 문자를 통해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의 일상은 문자의 등장으로 수월해졌다. 인류는 문자를 활용해 거래할 수 있었고,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다. 만약에 문자가 없었더라면 인간은 제국의 운영에 필수적인 행정 기구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인류는 점토판에서 종이에 이르기까지 문자를 쓰고 기록하여 남겼다. 이로 하여금 우리는 인류 문명의 모습을 보존하고, 문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문자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인류는 무한한 문명과 문화를 창조했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글은 문명과 문화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말하듯, 인류는 문자가 있음에 정보를 이어갈 수 있었다.
생물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에 의하면 문자와 문서는 인류 문명에서 가장 흥미로운 현상이다. 문자는 소위 '원시인'과 우리, '문명인'을 구별하는 뚜렷한 특징이기도 하다. 문자를 구성해 문장을 만들고 글을 쓰는 행위는 의사소통에서 상업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의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고대 중국의 '나시족'은 선조의 풍습을 기록하고 경전을 남기기 위해 상형 문자를 만들었다. 이 문자는 2000자 이상의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조선 시대에는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백성들도 문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근대에 이르러 문자의 중요성은 더욱 대두되었다. 문자는 영토 확장부터 효율적인 통치를 하는 데에도 필수적인 수단이었다. 인류는 문서를 활용해 토지 소유권 협약을 맺었고, 토지를 상속한다는 계약도 문서를 통해 이루어졌다.
15세기 중반, 글은 또 다른 국면을 마주했다.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활자 인쇄술을 발명한 것이다. 이 기술을 통해 유럽인들은 성서를 대량으로 인쇄하여 널리 보급할 수 있었다. 이는 일반 사람들의 문자에 대한 접근성을 비약적으로 늘림과 동시에, 16세기 초반 유럽 사회 종교 개혁의 기폭제가 되었다.
20세기 후반 정보 통신 기술이 혁명을 맞으면서, 인류는 기존의 소통 양식에서 벗어나 모바일이나 컴퓨터를 활용한 온라인 소통 시대에 접어들었다. 21세기 현재, 이른바 정보화 시대에도 인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의사소통한다. 이에 여전히 문자가 필수적인 것은 당연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고, 글을 써서 남기는 것에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글쓰기는 기록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글을 써서 체험을 남길 수 있다. 사색을 남길 수 있다. 또 진실을 규명할 수도 있다. 사람은 글을 써서 자아를 탐색하고 성찰하며, 더 나은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깊은 숙고가 넘쳐흐를 때, 비로소 글쓰기는 의미 있는 행위가 된다. 그저 '글'은 그뿐이다. '글쓰기'가 의미를 가지려면 탐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김영하 교수에 의하면 글쓰기는 인간에게 남겨진 가장 마지막 자유이다. 모든 것을 빼앗긴 인간도 글만은 쓸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지키는 마지막 수단이다. 따라서 예로부터 억압하려는 자는 총보다 펜을 두려워했다. 펜이란 본질적으로 굴복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프리모 레비가 제시한 글쓰기의 아홉 가지 동기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기록의 욕구, 쾌락의 욕구, 계몽의 욕구, 변혁의 욕구, 표현의 욕구, 해방의 욕구, 허영의 욕구, 출세의 욕구에 의해 글을 쓴다. 이러한 욕구들은 우리가 글을 쓰고 싶게 한다. 때로는 이 중 여러 가지 욕구들이 섞이기도 한다.
또 영국의 작가인 조지 오웰은 그의 에세이에서 글을 쓰는 이유를 네 가지로 설명했다. 그는 '순전한 이기심', '미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에 의해 글을 쓴다고 밝혔다.
순전한 이기심이란 남들보다 똑똑해 보이고 싶고, 어린 시절 본인을 무시한 어른들에게 보복하고 싶은 것이다.
미적 열정이란 세계의 아름다움, 말의 아름다움, 말 배열의 아름다움을 지각하기 위한 것이다.
역사적 충동이란 사견 없이 바라보아 찾아낸 진실을 모아 후대에 전하고픈 것이다.
정치적 목적이란 세계를 어떠한 방향으로 밀어 보내고자 하는 것이다.
작가나 작가 지망생만이 오웰이 설명하는 글쓰기의 네 가지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위 글쓰기 욕망을 경험하고 글을 쓴다. 특히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삶의 여러 현상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표명하고픈 욕망과 밀접해 있다. 사람들은 사회와 정계에 폭로하고 싶은 의혹이 있을 때 글을 쓴다. 이러한 면에서 글을 쓰는 행위는 다분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다. 또한, 현실의 사안들에 대해 숙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적 행위이다.
오늘의 포스팅에서는 글, 문자의 역사와 인류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인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유산은 문자일지 모른다. 이 포스팅을 읽은 여러분 모두 깊이 숙고하여 내 내면을 건드리는 글을 써 보기 바란다. 더 나아가, 나의 의견을 명확하게 글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